게임2018. 4. 12. 19:15

남코 역사의 증인
일본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터이다.


남코 역사의 증인은 이분


일본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터이다.


엔도마사노부씨


 
1981년 남코 입사. 게임 디자인과 프로그램을 담당. 
제비우스나 돌아거의탑등
(여러 가지 명작을 만든 전설의 크리에이터)


 
하지만 엔도 씨는 입사 당시부터 소프트 관계를 받지는 않았다.


 
- 처음에는 말이죠, 하드웨어의 설계가 되지 않겠냐고, (전공이)공학부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전기의 지식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도면 그려보라고 해도 하루 중일 걸려서 선배에게 그렇게 오래 걸려라고 해, 거기서 게임하면서 놀고 있으라고 해서 놀고 있었지요.


 
구체적으로는 디그더그로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디그더그의 게임하는 모양.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그걸 점점 종이에적어 그걸 요약한 것이 뒤에 딕션어리 라는 마메 책이 됩니다만,  아마 그게 최초의 공략집(책)이 아니었을까?!. 인쇄물로서... 
그런 저를 보고 소프트 만들어 보면 어때. 라고 해서 프로그램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놀이로 만든 디그더그 의 공략책이 평가 받아 크리에이터로서 한발 내밀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 만든 것이 지금에도 전설이라고 하는 슈팅게임 제비우스(1983년, 아케이드게임=오락실 게임)


먼저 그 타이틀의 유래에 대해 물어보았다.


 
-4번째의 행성이라는 제비어의 의미 같은 걸로 되어 있지만 그건 뒤에 내가  생각한 것이고, 
내가 처음 없었던 회의실에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물었지만, "특별히 의미 같은 건 없어. 일본어 탁점(濁点)이붙는 3~4문자로 멋있어 보일 것 같아 붙였을 뿐이야". 그걸로 정했다고 합니다.
어~ 그럼 스펠 X로 해주세요. 제록스(인쇄기기 회사) 등 X가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습니다.


 

그 외에 고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 스토리라던가, 제비어(언어)를 뒤에 생각한 것입니다. 

말을 맞추려고 생각해낸 제비어 자료를 보면 이제까지는 없었던 치밀한 세계관을 탄생 시켰다. 
더욱이 게임을 전제로 소설 "제비우스 퍼스트라운드 사가"라는 1991년에 출판되었다.
계속해서 게임 시스템에 대에 이야기 해보면 거기에는 크리에이터로서 가 아닌 플레이어로서의 고집이 있었다.


 
  
  

내가 별로 게임을 잘하지 못했다는 게 원인이지만 못하는 사람에게는 쉽게, 잘하는 사람에게는 점점 어렵게 하는 구조를 넣고 싶었지요. 특점이라던지, 죽은 횟수라든지 그런 걸 보면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구조. 지금 말하면 그건 AI입니다만, 그런 걸 집어넣었지요. 

- 당시에는 획기적인 플레이어에 따라 난이도가 변화하는 AI(인공지능)에 가까운 구조를 도입. 

그 밖에 게임 사상 처음으로 "숨은 캐라"를 설정 유저 들러부터는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 제작회사 내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먼저, 안되잖아 하는 이야기가 처음에 들었지요. 슈팅게임이라는 건 적을 쏘는 통쾌감이 중요한 것이고 보이지도 않는 적을 맞추는 것은 통쾌감이 없잖아. 저는 그건 버그입니다.라고 말하니, 그럼 버그를 고처 라고 해서 그거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른다고 해, 검사부(게임을 제품화하기 전에 테스트하는 게임회사의 부서)에 보내 검사부에서는 점점 "죽순(대나무와) 파기" 라 하고들 해서 어디서 나올지는 몰라도 여기 있겠다고 파보는 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처음 반대했던 사람이 찾아와 그래 잘했다. 방법 좀 알려줘라고 했습니다.


 
엔도가 씨가 도입한 수많은 실험은 뜨거운 지지를 받아 크리에이터로서 강령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엔도씨가 제비우스를 플레이



 

1984년 돌아거의탑 (아케이드판)


액션 게임에 RPG의 요소를 넣은 경이는


 

영화 ET(스필버그 감독 영화)를 보고 그 원작을 읽고 영화 속의 플레이하고 있던 게임을 제작. 

그럼 당시에는 의외로 FLOOR를 60층으로 한 이유는? 

당시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건축물이 선샤인(이케부쿠로의 빌딩). 그걸 걸어 올라가면 어떨까. 
한 층 한 층 선샤인을 오르는 모습. 그런 걸 생각해가며, 어째 중 2학년 같은 어린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실제하고 싶었던 것은 어드 벤처의자 미로이기 그 요소를 넣기 위해 어떤 형태가 좋을까 생각할 때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온 것이 보물상자 시스템입니다. 

 

 여러 수수께끼를 풀어가고, 어떤 방법으로는 저주가 풀리는 것 같은 보물상자가 봉인되었다. 

어려운 보물상자의 출현 방법. 당시에는 클레임도 많았다고 합니다. 
가장 불만이 많았던 건 스타트 버튼 누르면 어떻게 되는거야 라는 거.(31층 보물상자 나오게 하는 법) 
나 자신이 만들고 곧잘 일어버려 저 자신도 오락실에서 놀지만 나도 찾으며 고생합니다.


 
  
  
그런 엔도씨에게 팬으로부터 이런 닉네임이 붙여젔다. 
당시 필리핀의 대통령이 독재적으로 국민들을 착취해서 마르코스 엔도라는 시대가 있었네요. 
돌아거의탑, 100엔 넣고 금방 죽어, 마르코스~ 라고 말하며 또 100엔 넣고 컨티뉴 하는 분들도 있고
 

그리고 돌아가의탑의 후속편으로 나오는 카이의 모험
가장 포인트가 되는 것은
캐릭터의 귀여움이죠. 


사실은 돌아가의탑 마지막에 나오는 카이가 너무 못생겼다고들해서 
카이의 모험에서의 게임오버 때의 카이는 패미콤 소프트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의 아름 다운 그래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분명 동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정도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일본 게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게임 최초의 미니스커트 캐릭터이므로 지금도 팬이 많네요. 
특히 재미있던 것은 초등학교 여자아이팬이 많아 오빠가 가지고 있던 게임 중에 내가 할만한 건 이게임 뿐이였다고 합니다. 당시 꽤 놀랐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야기로서는 게임 최초로 베드 엔딩으로 되지만 정말 당시의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에게는 "마지막 돌이 되죠?"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어른으로서, 큰일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쉽게 할걸 그랬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유감스럽지만 이야기는 그렇답니다.


선진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여러 가지 게임을 만든 엔도 씨. 


- 그 배경에는 남코의 창업자이기도 한 나카무라마사야(中村雅哉) 존재가 컸다


제가 게임을 하면 비켜봐 하고 함께 게임을 했습니다. 그런, 
재 있다는 것의 판단이 단순하게 글로 적는게 아니라 에모셜 한 그 무언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 좋지 않았나 싶네요.



-마지막이로 엔도씨에게 물어보았다. 남코란?...


그야 뭐 고향 이네요. 남코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게임을 만들어 오지도 못했고 다른 길을 걸었겠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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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본만끽! 재팬엔조이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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